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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영동선'프로그램! 작은 기록

SBS 스페셜 ‘영동선’(지난 2월 1일 방송된 것이 아닌 SBS CNBC를 통해 재방송된 2월 7일 프로그램)을 감상했다. 경북 영주에서 강원 강릉까지 193km에 이르는 영동선. 문득 생각나는 나희덕님의 시가 있어 책을 뒤적여 보았다.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평” 2001년에 나온 <어두워진다는 것>에 실린 아름다운 시.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어 그냥 섰다가 가는 몇몇 간이역들이 참 쓸쓸하게 보인 영동선 일주!

20여명의 사람들, 그나마 나이 든 어르신들로만 이루어진 양원(兩元)역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역이 없어질까봐 일부러 격일제로 기차를 타기도 했다 한다. 험한 산길을 돌아가는 영동선 주변 마을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옛날을 생각게 하는 아스라한 마음이 잠시 가슴을 휘 저어 놓고 가기도 했다.

지난 해 여름 나온 <한국의 간이역>의 저자인 건축가 임석재님에 의하면 간이역은 낭만은 물론 일제의 수탈을 증거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나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아픈 기억들까지도 낭만이라 한다면 간이역은 낭만과 수탈을 증거하는 역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낭만, 수탈은 물론 아픈 기억까지 증거하는 역이 아닐 수 없다.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나희덕님의 시처럼 승부역(承富驛) 인근에는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이용객들이 없었는데 “1999년 환상선 눈꽃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신호장에서 보통역으로 다시 승격된 역”이라 한다.

역 이름들 중에는 거촌, 법전, 임기, 분천 등 낯선 이름들도 있지만 영주, 봉화, 춘양, 도계, 동해, 묵호, 망상, 정동진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이름들도 있다. 정동진이란 이름을 대하니 문득 바다에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와 어르신들만 사시는 산골 마을의 엇갈리는 명암이 마음을 쓸쓸하게 한 프로그램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국의 간이역>을 홀가분하게 읽으며 기차 여행을 할 날은 언제쯤 올지?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해... 이슈

김용철씨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 관한 내용을 검색해 보면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단 하나의 신문사도 그 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경향신문이 그 책에 대한 소개 기사를 실었다가 돌연 삭제했다고 한다. 프레시안 기사에 의하면 조중동을 비롯해 매일경제신문사까지 광고 게재를 거부해 출판사측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그 뿐 아니라 무료 신문인 메트로측도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광고 게재를 거부하고 있는 정도라 한다. 삼성의 파괴적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아직 읽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바는 <삼성을 생각한다>가 단순히 선정적 내용을 담은 가십성 책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가십성 내용이 아닌 의미 있는 폭로성 책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관심을 갖고 서평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티스토리의 자일님은 “일일 방문자가 고작 40-60 정도밖에 안되”지만 “광고 지면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물론 내가 김용철씨의 책에 대해 갖는 걱정은 그 책이 단순한 폭로를 넘어 우리 사회와 경제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 보고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내용을 얼마나 많이 담았을까, 하는 점이다.

책 값도 만만치 않다. 할인받아 사도 2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 내 관심 분야인 문학평론과 철학 등의 분야의 책도 잘 읽지도 사지도 못하고 있는 요즘 형편에 김용철씨의 책을 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삼성의 파괴적 영향력에 대해서라면 궁금증이 크기만 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서관에 주문해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철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 일간지 광고 '원천 봉쇄'
언론이 삼성에게 쩔쩔맬 수밖에 없는 이유

행복을 위한 링크 이슈

지난 주에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김수행교수님의 글을 링크 했었다. 이번에는 그와 상응하는 곽노완교수님의 ‘기본소득’ 보장 주장과, “게으를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일자리가 생겨나 “일할 권리”도 늘어난다는 주장을 담은 조국교수님의 다들 행복하세요?란 글을 링크한다. 그리고 시사저널의 반도헌님의 ‘사오정’들을 위한 재취업 ‘희망의 창구’ 및. 30, 40대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한겨레신문 김연기기자의 글을 링크한다.

조국교수님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한국은 최장의 노동시간, 최고의 자살률, 최저의 복지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암울한 나라이다. 아니 암울하다기보다 “한국은 이미 ‘부자나라’이며, 더 많은 여가, 휴식, 오락, 복지를 위한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부와 성장력을 가지면서도, 구성원이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쉬고 놀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형성한 나라가 여럿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조국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우리 나라는 이미 부자 나라이지만 부의 혜택을 고루 누리지 못하는 나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수행칼럼]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
곽노완교수 "불안한 노후? 부동산 투기로는 해결 못 한다"
다들 행복하세요? / 조국
‘사오정’들을 위한 재취업 ‘희망의 창구’
생계형 알바, 정부선 ‘알 바 아니다’





봄, 그리고 문학평론 이야기 하루 하루..

오는 2월 4일은 봄이 열린다는 의미를 가진 입춘이다. 굳이 입춘이어서가 아니라 바야흐로 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요즘 날씨는 포근하다. 아직 몇 차례의 추위가 예정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서둘러 봄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 한 번의 투고도 해보지 못한 나에게도 봄이면 자연스레 신춘문예 생각이 난다. 신춘문예의 무의미성을 지적한 한겨레신문의 영향을 받아 줄곧 신춘문예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도 요즘은 시대의 대세(?)를 어쩌지 못하고 이 신문 저 신문의 당선자들의 필력과 그들이 걸어온 이력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벌인 이벤트에 응모 했지만 글이 너무 길어서인지 가장 낮은 등수에도 뽑히지 못한 나는 마음이 심난하기만 하다. 1등을 차지한 사람의 글을 보며 나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 내지 관점으로 작품 해설을 한 짧고 간결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중도에서 끝을 맺은 듯한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제 KBS 1 radio의 명사들의 책읽기 프로그램을 들었다. 출연자는 약간은 뜻밖으로 마흔도 되지 않은 강유정(문학평론가겸 영화평론가)씨였다. 1주일에 두 권의 책을 읽는다는 그는 말도 참 잘 풀어나갔고 또 그만큼 준비된 사람인 듯 싶었다. 그러나 문학 평론 분야에 작품을 출품하기까지 어떤 선배 또는 동료의 평론을 참고로 했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진행자가 묻지 않아서였겠지만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뽑힌 당선자는 제혜석이라는 필명을 가진 30대 남자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기술 관련 서가를 제외한 모든 서가”를 섭렵했다는 그는 이번이 첫 응모라고 했다. 그는 “학사 경고를 연달아 세번 받아 제적당”한 대학 중퇴자이다. <달려라, 그만-김애란을 ‘기품’의 소설로 읽기 위한 하나의 시론>을 써서 당선된 그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패기가 돋보이는 새로운 작품론이라 했다.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 또는 관점의 중요함을 한번 더 일깨워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선자는 “김애란에 대한 모든 평론을 거의 다 봤는데 내가 본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 글을 쓰게 됐다”며 “문학 제도와 전통의 밖에 있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선자와 무관하게 나는 당분간 새로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완전히 다를 수 없는 관점에 대해 당분간 생각하며 지내게 될 것 같다.

초보불자님께 작은 기록

제가 천도재에 대해 미신적이라 말한 것은 조금 성급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법보닷컴 기사에 실린 “300여 명의 동참자를 복숭아 나뭇가지로 때리고 팥을 뿌리는 등 굿당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법당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구절은 사실상 천도재가 미신적인 모습으로 굴절되어 거행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법보닷컴 기사는 천도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미신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기에 제가 앞서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천도재를 미신적이라 말한 것은 기독교가 아닌 모든 종교들을 미신이라 보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禪보다 더 의미있고 비중있게 치루어지는 불교내의 행태들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차원에서였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신자인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 앞에서 기독교 비판을 하는 데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때 오히려 그분들의 비판에 동의하고 긍정하곤 합니다.

불교가 제가 믿는 종교가 아니기에 비판하거나 미신적이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저는 기독교가 제가 믿는 종교임에도 비판을 아끼지 않습니다. 저는 “계속되는 천도재 동참 권선에 신도들의 이탈도 가속”된다는 기사에서 교회를 더 크게 짓기 위해 헌금을 종용하는 겉치레에 빠진 기독교를 보았습니다.

사실 돈은 그리 간단히 볼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이준구교수는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를 통해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그리고 기여입학 등을 금지하는 3不정책 중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금지에는 찬성하지만 기여입학 금지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대학이 기여입학제도를 활용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영역 즉 능력과 노력만이 통할 뿐 돈은 통하지 않는 영역이 함락(陷落)되어서는 안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천도재도 바로 그 문제의 돈과 연관된 것이기에 종단은 종용하고 불자들은 시험에 빠지는 것이라 한다면 지나칠까요? 기사에 나와 있듯 지금 조계종의 천도재는 사찰 부채 해결과 성역화 불사 등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치러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독교, 불교 공히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대할 수 없는 어떤 실체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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